[스크랩] 박재광 화답송 이야기
한 십 몇년 전 쯤 어느날, 박재광 선생님이 악보 한 장을 보여주셨습니다. 손으로 쓴 악보였죠. 화답송. 박선생님이 지휘하는 청담동 성당에서 교중미사 때 부를 악보였습니다. 그 때만 해도 미사 때 화답송을 노래로 부르는 성당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노래로 부른다 해도 대개 가톨릭성가집에 예시된 360~362번 화답송 멜로디에 그때그때 가사만 바꿔 부르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박선생님은 매주 새로운 화답송을 작곡하여 성가대원들을 연습시켜 주일미사 때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시편에 보면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불러드려라’ 라고 했잖어. 그런데 맨날 똑같은 가락에 말만 바꿔 불러서 되겄어?”
맞는 말씀입니다. 참 지당하고 좋은 발상인데 문제는 악보 상태였습니다. (혹시 박선생님의 친필 악보를 보신 분은 그것을 그대로 대량 복사한 악보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악보 제가 가져가서 깨끗하게 만들어 올까요?”
“엉? 그렇게 해 줄 수 있겄어? 그럼 좋지~”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긴 고생을 자초한 것이죠. 그게 십년이 넘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하..
손으로 쓴 악보를 출판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을 사보, 혹은 정사작업이라고 합니다. 情事나 情死가 아니고 淨寫입니다. ㅎㅎ.. 컴퓨터가 없을 때에는 이 작업을 악보 전문 조판공이 수많은 음표와 악상기호가 새겨진 놋쇠 도장을 오선지에 손으로 일일이 찍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악보정사료가 비쌀 수밖에 없었죠. 그 때문에 가난한 음악가들은 주옥같은 곡들을 만들어 놓고도 출판을 못하고 쌓아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그러다가 컴퓨터로 이 작업을 할 수 있게 되고나서부터 이 일이 훨씬 수월해진 것이죠.
그런데 박선생님이 매주 작곡하는 화답송을 청담동 성당 한 곳에서만 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상의하여 가톨릭굿뉴스 성가게시판에 올려 여러 성가대에서 자유롭게 퍼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차츰차츰 조회와 다운로드수가 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화답송이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도 이에 고무되어 저마다 자신의 곡들을 성가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하였으며 가톨릭굿뉴스 운영자도 [악보감상실]이라는 코너를 개설하여 이곳에 들어오면 많은 작곡가의 다양한 악보를 받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주님의 식탁이 더욱 풍성해진 것이죠.
우리의 고마운 카페지기 안창윤 형제님이 박선생님의 화답송을 ‘우리 마당’에도 올려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며 자료실에 [박재광 화답송/복음환호송]코너를 신설하였기에 기쁜 마음으로 회고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