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기톡사진

가톨릭 기록사진(안 몬시뇰, 원형근 주교, 홍용호 주교)

김종선 라파엘 2007. 8. 9.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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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조지 캐롤 안 몬시뇰 신부님원형근(라리보) 주교님, 그리고 홍용호 프란치스코

주교님 사진과 관련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번째 사진은 평양교구 신우회 사진이며, 연대는 1950년에서 1960년 사이가 아닌가 생각됨.

(사진 앞줄 가운데 주교님 복장이 조지 캐롤 안 몬시뇰, 그리고 몬시뇰 좌측 세번째, 네번째

메리놀회 신부님은 목요한 신부님, 노 신부님, 몬시뇰 우측 한국 신부님 뒤에 계신 분은

메리 가별 수녀님)  

 

 

두번째 사진은  연대는 알지 못하며 맨우측 연세 많이 드신 흰수염의 주교님이 원형근(Larriveau

라리보) 주교님이며 좌측에는 조지 캐롤 안 몬시뇰 신부님. 

 

 

세번째 사진과 네번째 사진은 1944년 제6대 평양대목구장에 임명되신 홍용호 프란치스코 주교님.

주교님은 안타깝게도 6·25  전쟁 직후 북한군에 의해 피랍 행방불명 상태이다

 

 

 

조지 캐롤 안 몬시뇰

안 몬시뇰의 대표적인 업적 성 라자로 마을 창설 군종교구 창설이다.

 

-성 라자로 마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 은혜 60년사 486쪽)

성 라자로 마을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채 불구의 몸으로 유랑하는 나환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이 땅에서 나병을 영구히 퇴치하려는 목적으로 조지 캐롤(George Carroll)

몬시뇰에 의해 1950년 6월 2일 문을 열었다. 현재 이곳에는 음성나환자로 이루어진 자활주민

235명(79세대)과 양성·불구·보호 환자 110명(남 58, 여 52명)이 모여 살고 있으며, 나환자연합회와

국립나병연구소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이 이 마을에 수녀를 파견한 것은 성 라자로 마을에 1983년에 피정의 집

'아론의 집'이 완공되자 이경재 알렉살델 신부가 그 관리를 수녀원에 위임해 옴에 따라 이루어지게

되었다.

1983년 9월 15일, 양명숙 세라피나 수녀, 진말돌 프란치스까 수녀가 아론의 집 담당으로, 유국향

로마나 수녀가 유아원 개설 준비 담당으로 파견되어 설립하였다.

이어 정인순 이레나 수녀가 경리 담당으로, 양희진 아숨다 수녀가 전교사목 담당으로 파견되었다.

유아원은 개설이 어려워 중단되었고 1985년 1월에는 성 라자로 마을에서 환자 간호를 담당하던

성모영보 수녀회가 떠나가 이 분야의 일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이 맡게 되었다.

이 지원은 양성나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봉사의 특수성 때문에 원칙적으로 종신서원수녀만을

파견하고 있다.

수녀들은 이곳에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부숴지고 찢겨진 나환자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 또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각계 각층에 불러 일으키고 형제적 사랑의

나눔을 위해 수시로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과 원생들의 기교가 되어 주며, 희생과 고통의 그리스도

신비체를 몸소 체험함으로써 힘든 봉사 속에서도 큰 기쁨으로 나날을 봉헌하고 있다.

 

-군종교구 창설

1950년 6·25 중 군종제도 창설

1989년 10월 23일 교구 설정

10월 7일은 '군인주일'이다.

한국교회 군사목활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먼저 군사목활동은 평양교구장 서리였던

캐롤 몬시뇰이 6·25  전쟁 중에 이승만 대통령에게 군종제도의 창설을 건의함으로써 시작됐다. 1950년 12월 정부의 특별훈령에 의해 마련된 군종제도를 통해 51년 2월 28일 11명의 사제가

1기 육군군종으로 입대함으로써 실질적인 군사목이 시작됐다.

1959년 주교회의에서 연중 1월 첫째주일을 '군목사업주일'로 제정했으며, 이어 1968년 10월

첫째주일을 '군일주일'로 제정해 올해로 39번째 군일주일을 맞는다.

군종신부단 임시총회에서 70년 1월 군종신부단 체계를 준교구로 개편한 후, 77년 군종대목구로

승격됐다.

1986년 10월에는 주교회의가 '군인사목에 관한 교황헌장'의 정신에 따라 군종교구 창설을 지지,

의결했다. 이에 군종신부단에서는 '군종교구 설정 요청서'를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에 제출했고, 1989년 10월 23일 한국 군종교구가 설정됐다. 그리고 그 해 11월 초대교구장으로 정명조

주교가 임명됐다.

이로써 한국교회에서 군사목을 시작한지 2007년 올해로 56년, 1951년 군종단이 창설된지 38년만인

1989년 군종교구가 설립됐다.

200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군종교구는 군인성당 76곳, 공소 193곳,군종신부 76명, 군종수녀 21명,

군인신자 8만여명의 교세를 이루고 있다.

 

원형근(Larriveau 라리보) 주교 (프랑스)

1933년~1942년

1907년 3월 10일 서품. 같은 해 5월 21일 조선 입국.

1926년 12월 14일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이듬해 5월 1일 주교로 성성됨.

1933년 1월 23일 교구장 승계.

1942년 1월에 은퇴하였다가

1958년에 초대 대전교구장을 역임.

1974년 8월 12일 선종.

프랑스의 라로뮤(La Romieu)에서 태어났으며 1904년 파리외방전교회에 들어가 1907년 3월 10일에

사제품을 받고 곧 임지인 한국을 향해 고국을 떠났다.

1907년 5월 21일 서울에 도착한 그는 1908년에 만주 간도(間島)로 파견되어 삼원봉에서 첫 전교

활동을 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젊은 선교사들이 군복무를 위해 프랑스로 돌아가자, 한국 교회는

일손이 달려 더욱 바빠지게 되었는데, 이때 신부님은 충청도 지방을 맡아 40여개의 공소를

돌아다니시며 사목을 하셨다. 신부님은 성격이 쾌활하여 한국인의 성격적 특성과 잘 조화를 이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호감을 느꼈으므로 전교에 많은 성과를 올릴 수가 있었다. 1916년에는

서울교구의 당가신부가 되어 교구살림을 맡아 보았고, 1926년에는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뮈텔 주교의

위임으로 실질적으로 서울교구를 다스렸다. 1933년에 뮈텔 주교가 사망하자 서울교구장으로 취임

하여 1942년 1월 5일까지 일제 하의 어려운 시기에 서울교구를 무사히 이끌어 나갔다.

1948년 충남지역이 독립된 포교지로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임됨에 따라 이 지역의 책임자가 되었고, 1958년 충남지역이 대목구로 설정됨으로써 초대 교구장이 되었으며, 1962년 교계제도의 설정과 더불어 정식교구로 승격됨과 동시에 대전 교구장이 되었다. 그후 주교좌 성당을 신축하는 등

대전교구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 그러나 고령으로 점차 격무를 감당하기가 어렵게 되자 1965년 3월 현직에서 물러나 고국인 프랑스로 돌아가, 1974년 8월12일 선종하였다.

주교님의 58년간에 걸친 한국 교회를 위한 봉사와 공로로, 1960년에 프랑스정부로부터

레지온 도뇌르 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1962년에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문화훈장을 수여 받았다.

 

홍용호 프란치스코 주교

한국전쟁 직전 순교의 길을 선택한 '평양교구 사제단'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최근 발굴됐다.

10ㆍ21 평양 탈환 당시 국군과 함께 평양에 도착한 제7대 평양교구장 서리 조지 캐롤 몬시뇰과 강현홍

ㆍ장선흥 신부가 당시 평양교구청에서 찾아낸 사진으로 추정된다.

평양교구 설정 80주년 준비위원회가 2004년 6월 메리놀외방전교회 미국 뉴욕주 어씨닝본원 고문서고에서 이 사진을 발굴, 최근 공개했다.

1950년 9ㆍ28 서울 수복 이후 북진 당시 평양교구청에서 캐롤 안 몬시뇰이 어렵게 회수한 사진.

1949년 신축 공사 중이던 관후리성당에서 당시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와 부주교(현재의 총대리 직책) 김필현 신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일제에 빼앗겨 헐린 성당 부지를 1946년 3월29일 평양시 인민위원회로부터 회수, 신축에 들어가

이듬해 9월1일 정초식을 가진 관후리성당은 1948년에 외형을 거의 다 갖췄다. 홍 주교와 김 신부는

1949년 5월14일, 6월에 각각 북한 당국 정치보위부원들에게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1949년 교구 사제 피정을 마친 뒤 평양 관후리주교좌성당 사제관 앞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이 사진에는 제6대 평양대목구장 홍용호 프란치스코 주교와 사제단 18명(성 베네딕도회 사제 3명 포함)의 생전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사진 윗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재호, 장두봉, 강현홍,김교명,

김동철, 박용옥, 석원섭, 홍도근, 홍건환, 조문국, 성 베네딕도회 사제(신원 미상), 이경호,

이춘근(베네딕도회), 안렐름 로머(베네딕도회), 서운석 신부, 홍용호 주교, 최항준, 김필현, 강영걸 신부.

사진 속 평양교구 사제들 대부분은 한국전쟁 전후 공산군에 피랍돼 행방불명상태다. 교회는 이들

대부분이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사진제공 / 메리놀외방전교회 본부, 평양교구 80주년 준비위원회

▶ 전대식 기자 / 평화신문 2007-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