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사진 몇 연도인지 잘 모르겠음.
앞줄 우측에서 두번째 외국인 수녀님이 가별 수녀님, 앞줄 좌측 첫번째 분이 저의 할머니 최현숙 안나. 나머지 분들은 사진 뒷장에 기록이 없어 존함들을 모르겠음.
두번째 사진은 1966년 4월 23일 사진이며 사진 가운데 계신 수녀님의 아마 회갑기념 사진이 아닌가 생각됨.
앞줄 좌측에서 두번째 수녀님이 가별 수녀님, 중앙줄 좌측에서 세번째가 최현숙 안나.
세번째 사진은 두번째 사진과 같은 내용이며 야외에서 촬영한 사진.
아래 글은 가톨릭신문 1982년 韓∙ 美 修交 100年의 가톨릭 主役들 기사에서 내용을 일부 교정 옮겨 온 것임.
메리 가별 수녀. 원명은 Mary Gabriella Mulherin 이다. 그저 가별 수녀로 통한다.
1900년 5월 21일생. 20세기 원년에 출생한 가별 수녀는 1930년 30세 때 미국 메리놀회 소속의 선교사로 내한, 1950년 6∙25동란 전까지 20년간 신의주와 평양근교의 명주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평양교구에서 20년간 평범한 선교활동에 심혈을 기울이는 동안 50세 때 6∙25동란을 맞이했다.
한민족의 비극인 6∙25는 가별 수녀에게 새로운 주님의 사업에 참여하는 계기를 심어주었다.
6∙25동란으로 미국 하와이로 피난한 가별 수녀는 52년에 다시 내한,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구호사업, 특히 전쟁미망인들을 위한 복지활동에 전념하였다.
전쟁복구에 뛰어든 가별 수녀는 외국민간원조기관 한국협의회(KAVA) 이사를 역임하면서 “한국문제는 한국사람들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고 역설했다
전후복구 작업에 참여하면서 한국민에 자조자립을 염원해 온 가별 수녀는 57세 때 캐나다 사베리오 대학에서 안티고니쉬 운동(Antigonish Movement)을 연구하고 돌아와 자조∙ 자립∙ 협동을 기조로 한 협동조합 운동을 한국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한국 신용협동조합 운동의 태동이라 볼 수 있다.
가별 수녀 자신이 소속돼 있던 KAVA를 비롯 UNCRA∙ CUNA등의 협조를 얻어 협동조합 연구회∙ 강연회등을 개최하였다.
戰後의 궁핍한 생활 속에서 저축할 것이 없는 서민들에게 상부상조를 통해 스스로 가정경제를 향상시키는 방법을 모색하자고 호소했다.
이러한 준비과정을 거쳐 1960년 3월부터 부산 메리놀 병원의 나자렛 집에서 메리놀 병원, 성분도 병원, 가톨릭 구제회의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최초의 신협인 [성가신용협동조합]을 창립하였다.
메리 가별 수녀와 그 동지들의 각고 끝에 태어난 이 조합은 이듬해 CUNA에 가입, 그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가별 수녀는 조합원 교육에 온갖 정성을 쏟으면서 신협운동의 조직적인 보급을 위해 62년 협동조합 교도봉사회(現 서울대교구 협동교육연구원)를 부산에 창립, 초대 원장으로 일했다.
단위조합이나 임직원들로부터 재정원조를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라 가별 수녀는 서독(독일은 그 당시 동∙ 서독으로 분리되어 있었음)의 미세레올, 미국의 가톨릭구제회 등에서 재정적 도움을 받아 협동조합 교도봉사회를 이끌어갔다.
같은 해에 가별 수녀는 신협 경상남도지부를 설립, 국제신협연합회 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세꼐속에 한국신협을 심었다
또한 같은 해 10월 14일에는 한국 최초로 부산에서 [국제신용협동조합의 날] 기념식을 개최하였고, 그 이듬해에는 경남지부가 세계신용협동조합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까지 했다.
가별 수녀는 1963년 협동조합 교도봉사회를 서울로 옮기면서 협동교육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주로 지도자교육과 신규조합임원 강습회를 맡아온 협동교육연구원과 가별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로 신협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가별 수녀는 1964년 4월 26일 한국신협연합회 설립의 주역을 맡고 제1∼3대 이사 및 전무를 역임하면서 협동교육연구원에 의존하려는 신협연합회의 자립을 촉구, 개척기에 있는 한국신협운동을 이 땅에 완전히 정착시키고, 국제적인 유대를 모색하는 데에도 커다란 공을 남겼다.
가별 수녀는 67년 10월 31일까지 협동교육연구원 초대원장으로 일하다가 미국 메리놀회 본원으로 돌라갔다.
그리고 1982년 韓∙ 美 修交 100年의 가톨릭 主役들 방빠뜨리치오 주교, 현하롤드 대주교, 안제오르지오 몬시뇰, 서요셉 신부와 더불어 가별 수녀는 미국인 성직자로서 한미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한국 정부로부터 국가 유공자 표창을 수여받았다.
가별 수녀는 1993년 5월 미국에서 향년 93세로 선종하였다.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 동상 제막
|
가톨릭신문 사람들 2007-03-04 기사.
'가톨릭 기톡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 몬시뇰 회갑사진 (0) | 2007.08.30 |
---|---|
가톨릭 기록사진(안 몬시뇰, 원형근 주교, 홍용호 주교) (0) | 2007.08.09 |
[스크랩] 가톨릭 기록사진(노기남 바오로 대주교) (0) | 2007.07.18 |
[스크랩] 카톨릭 기록사진(평양교구의 목요한 신부) (0) | 2007.07.12 |
가톨릭 기록사진 (1976년 복자 김대건신부 순교130주년 기념현양대회) (0) | 2007.07.05 |